BEAUTIFUL FELLOW
일상을 혁신하는 사람들, 뷰티풀펠로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강미선 주식회사 282북스 대표
예술을 통해 누구나 말하고, 듣는 사회가 되도록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강미선 펠로우는 고립은둔청년 당사자였다. 실패의 연속으로 잠시 궤도를 잃었던 사회초년생 시절, 그녀에게 은둔의 시간은 여러 고민과 글쓰기로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사회에 나갈 작은 용기를 얻게 된 그녀는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 자신만 힘들다고 생각했던 세상에 자신보다 힘든 사람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그녀는 282북스를 시작하게 된다.
282북스에서는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생소한 '사회적 처방' 개념을 도입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숨겨졌던 사회소수그룹과 만나고 있다. 글쓰기와 예술을 접목한 282북스의 워크숍을 통해 사회소수그룹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의 예술로 풀어내고, 이 콘텐츠는 사회에 확산되어 대중의 인식개선을 돕는다. 예술을 통해 사회 소수그룹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강미선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82북스의 소셜미션
다양한 사회문제 속 소수 그룹이 건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도록, 예술을 통한 사회의 소통구조를 만들어갑니다.
282북스의 사업
예술기반 사회적처방 워크숍을 개발·운영하여 소수그룹의 심리/정서적 안정을 지원하고, 당사자 중심의 OSMU 예술 콘텐츠를 제작·확산합니다.
282북스의 282는 나뭇잎의 이파리를 뜻한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궁금해요.
저는 자연에서 쉼을 얻는 사람입니다. 힘을 얻고 싶을 때는 바다를 가고, 외로울 때는 숲을 가곤 해요. 여러분은 잎이 무성한 숲을 걸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숲 속을 걷다보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쉼을 얻어가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누군가는 조용히 걸으면서, 누군가는 나무 아래 앉아 쉬면서, 누군가는 나무에 오르면서, 또 누군가는 뛰어다니면서요.
이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숲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데, ‘아, 우리가 전하는 이야기도 저렇게 사람들에게 닿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잎이 무성한 나무가 모인 숲처럼,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여 잎이 풍성한 나무가 되고 그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면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타인의 이야기를 만나는 거죠.
그래서 ‘이파리’라는 이름을 지었고, 그것을 숫자로 282라고 쓰게 되었어요. 숫자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데요. 저희 할머니가 글을 쓸 줄 모르셨는데, 그래도 숫자는 알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글을 모르는 누군가도 우리 이름을 알길 바라는 마음으로 숫자 282를 붙여 282북스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282북스 / 워크숍 참여중인 강미선 펠로우
나무 같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한명한명의 이파리라고 표현해주셨는데, 그럼 이 개개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282북스는 ‘모든 이의 이야기는 소중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이 말에는 어떤 거창한 철학이 있다기보단 저의 경험이 담겨있는데요.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저는 삶에서 자주 보아왔고, 저 역시 저만의 사정으로 어떤 사회 문제 속 한 사람이 되었던 경험이 있었거든요.
저는 한때 제 이야기를 할 줄 몰랐습니다. 무엇이 힘든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 채 삶이 크게 흔들리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은둔청년이라고 표현을 하던데, 그 당시 말로 히키코모리라고 불리던 청년이 바로 저였죠. 그 때의 저는 늘 어떠한 허전함을 달고 살았어요.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좁은 자취방 안에서 오롯이 존재만 하던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러다 글을 쓰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며 비로소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다시 나와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라구요. ‘나의 힘든 삶’만 존재하던 세계에 ‘나와 같이 힘들어 하는 다른 삶들’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니 각자 저마다의 사정과 이유, 그리고 개인의 이야기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모일 때 우리가 그동안 너무 쉽게 ‘개인의 문제’라고 불러왔던 것들, 혼자서는 설명할 수 없던 균열들이, 하나의 사회적 맥락 안에서 해석된다는 것을 언뜻, 아주 언뜻 알게 되었죠.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말할 기회를 갖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저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믿고, 천천히 들여다보는 과정이 한 사람을 얼마나 단단하게 만드는지 경험을 통해 먼저 알게 되었죠. 그래서 저는 거대한 담론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개인적인 서사에 먼저 관심을 갖게 됐어요.. 무엇보다도 그 개인의 이야기들이 서로 연결될 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또 다른 사회의 이야기가 드러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82북스는 바로 그 작은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282북스 /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 당시 강미선 대표
282북스에서는 워크숍에 참여하는 분들을 ‘사회소수그룹’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사회소수그룹의 의미가 무엇인지, 사회소수그룹에는 어떤 대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상을 보고 흔히들 소외계층, 취약계층 이라고 하는데요. 사실 저희는 그런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282북스가 말하는 사회 소수그룹은 사회의 표준적인 제도와 서사에서 기본으로 전제되지 않아 반복적으로 배제되거나 단일한 이미지로만 소비되어 온 사람들을 말해요. 상대적인 수가 적어서 소수그룹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다수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거죠. 처음 이런 분들을 만났을 때 무어라 불러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사회 소수그룹’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 단어가 다소 딱딱하고 대중이 이해하기엔 너무 먼 느낌이라 점차 나은 표현을 찾아 보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처음 소수그룹을 모을 때는 인원이 모집될까에 대한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사회소수그룹 친구들이 282북스 프로그램에는 마음을 열고 모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맞아요.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는 걱정이 참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올까..?’에 대한 고민이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이 찾아 오더라구요. 아마도 모두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럴만한 자리가 없어서 나타나지 않았었던 것 같아요. 자기 이야기를 할 만한 안전한 공간은 찾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당사자들과 만나서 프로그램을 할 때 가장 신경쓰는게 바로 ‘안전함’이에요. 이런 282북스 특유의 안전함 덕분에 저희 프로그램에 방문해주셨던 분들 중 저희 프로그램이 잘 맞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주변에 282북스에 대한 추천도 많이 해주신답니다. 그래서 지금은 누구누구 친구라고 하면서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사업 초기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다짜고짜 전화를 주셔서 “거기 뭐하는데냐, 종교단체냐, 뭐 파는 곳이냐, 이런거 왜하는거냐” 묻더라구요. 당황하기는 했는데 아마도 그 분은 이 곳이 자기 이야기를 할 만큼 안전한 곳인지 알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에도 프로그램 시작 전에 꼭 하는 말이 “저희 종교 단체 아니구요, 다단계 아니구요, 사회적기업입니다.” 라고 친절히 설명하고 시작한답니다.
예술기반 사회적처방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아직 낯선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예술기반 사회적처방에 대해 대중 분들께 한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일반적인 예술심리치료와는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해요.
‘사회적처방’은 약물을 사용한 치료가 아닌 커뮤니티 중심의 비약물 치유 방법으로 영국에서 시작해서 유럽에서는 많이 활용되고 있는 멘탈헬스케어서비스 중에 하나에요. 사회적처방은 개인이 겪고 있는 정신건강 문제의 사회적 원인을 해결하고 개인의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죠. 사회적 처방에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동반되는데, 저희는 그중에서도 ‘예술’을 활용해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그래서 282북스의 프로그램은 현직 아티스트와 함께 진행된답니다. 보통 여러 예술 장르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창작물을 만들기까지 자신만의 사유를 거치고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겪는데요, 저희는 그 과정을 커리큘럼으로 만들어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보내고 그 내용을 또 다른 창작품으로 잘 꺼낼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죠. 예술이 가지고 있는 치유의 효과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데요, 저희는 창작과정에서 얻어지는 치유의 효과를 1차적으로 활용하고 당사자들의 이야기로 만들어 낸 창작물을 통해 당사자가 아닌 사회의 여러 구성원들이 해당 작품을 관람하고 이를 통해 치유를 얻는 것을 2차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282북스 / (좌)이주 여성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모습,
(우)암 경험자들과 찍은 화보의 한 장면
특별히 워크숍을 기획할 때 282북스만의 기준이 있을까요? 그리고 대상 별로 콘텐츠의 형식도 달라지는데 어떤 것들을 고려해서 콘텐츠 형식을 결정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282북스가 워크숍을 기획할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모두 고려하는 구조를 만드는 거예요. 참여자의 경험이 소모되지 않으면서도 그 경험이 사회와 연결될 수 있으려면 어떤 형식이 가장 적절할지를 가장 먼저 고민하는거죠.
그래서 하나의 사회문제를 다루더라도, 그 안에서도 진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메시지를 세분화하고, 그 메시지가 잘 전달 될 수 있는 방식이라면 어떤 틀에 갇히지 않고 유연하게 기획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한가지 단일 장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르를 섞은 다원형식의 예술을 자주 시도하는 편이고, 참여자 각각의 상태와 속도에 맞게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워크숍에 여백을 많이 두죠.
제일 우선은 참가자들이 워크숍 시간을 안전하다고 느껴야하고, 콘텐츠를 접하는 대중은 그 콘텐츠에 거부감이나 편파적인 시적이 들지 않도록 해야하니까요. 늘 그 균형을 맞추느라… 머리가 너무 아픕니다. ㅎㅎㅎ 그런데 동시에 그 과정을 엄청나게 즐기기도 해요.
ⓒ282북스 / 메리골드의 꽃말을 아시나요 사진전 장면, 도록 일부
사회적처방의 포인트는 커뮤니티 기반이라고 하셨는데, 282북스를 통해 만들어진 사회소수그룹의 커뮤니티 이야기가 궁금해요.
저희 커뮤니티는 굉장히 조용한 편이에요. 떠들썩하게 만나고, 으쌰으쌰하는 기운찬 커뮤니티라기보다는 그저 존재함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사라지지 않는 연결이 남아있는 공간에 가까워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다가도 뜬금없이 누군가 툭툭 이야기를 던지거나 만나자고 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이어지고 하더라구요. 이 커뮤니티는 보통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만드는 단톡방을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워크숍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 대부분이 나가지도 않아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나가지 않는 걸 보면 신기할 때도 있죠.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자주 말을 나누지 않아도, 그저 어디엔가 연결되어 있다는 그 감각만으로도 삶을 버텨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 커뮤니티를 통해 계속 확인하게 되는 것 같아요.
ⓒ282북스/ (좌)궤도이탈, 탈 가정 청년 카톡방,
(우)탈가정 청년들과 어린이대공원 봄소풍 사진
지금까지 282북스를 통해 만난 사람들 중, '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고 더욱 크게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아주 드라마틱한 한 순간이 있었다기보다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일상의 순간순간에서 그런 느낌을 자주 받아요. 참여자 중 어떤 분들은 아주 덤덤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며 “별거 아닌 이야기예요” 하시는데요. 내용을 듣다 보면 그 이야기가 참 별거(특별한 것)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외면해 왔던 틈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니 말이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콘텐츠를 만들어 선보이며 대중의 반응을 마주하는 과정 속에서 제가 계속 이 일을 하게 만드는 두 가지 말이 있는데요. 이 말을 소개해드리면 더 와닿으실 것 같아요. 저희 프로젝트 참여자 분들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요. ‘이런 이야기도 말해도 되는 거였군요.’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개인의 이야기가 단순한 개인의 감정 해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이야기로 전환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너무 오랫동안 전달되지 않았거나, 말했지만 기록되지 않았던 이야기, 존재했지만 사회적 지위를 갖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개인의 이야기를 282북스가 잘 다듬어서 사회에 전하면, 그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통해 ‘나도 그런데…’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이야기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두 마디가 서로 연결되고 교차되는 순간마다 더 더 이 일을 잘해야지 굳게 마음 먹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도 말해도 되는군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에요
"
어찌 보면 탈가정 청년은 282북스를 통해 우리 사회 속에 발견된 것이기도 하겠네요. 282북스를 통해서 이 친구들에 대한 지원 제도도 마련되고 있다구요? 282북스가 이런 이슈를 의제화 하는 방법이 궁금해요.
탈가정 청년은 새롭게 나타난 존재라기 보다는 우리 사회에 오래전부터 함께 있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존재이자 외면해왔던 이야기에요.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탈가정 청년이 원래부터 우리 사회에 존재했음을 알리는 것부터가 시작이었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구체적인 이야기와 사례였습니다. 그래서 282북스가 가장 잘하는 것!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 목소리를 알리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이 때 좋은 기회로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 ‘청청모’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4년동안 사업을 지속하며 탈가정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고요.
많은 이야기가 쌓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 이야기를 전달하다보니, 이전에는 주목하지 않던 사각지대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하나둘씩 생기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분들이 또 함께 목소리를 보태주시면서 함께한다는 것의 힘을 정말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하나의 키워드가 머리에 들어오면 계속 그 생각만 하는 사람인데요. 지난 4년 동안은 머릿속에 ‘탈가정 청년’밖에 없었어요. 누군가를 만나거나, 미팅을 하거나, 하다못해 가족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도 늘 ‘탈가정 청년’에 대해서 말하고, 인터뷰를 할 자리가 있거나 협업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탈가정 청년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를 고정 멘트로 사용할 정도였어요. (어떤 날에는 꿈을 꿨는데 제 꿈속에 대통령이 나와 제가 대뜸 달려가 ‘혹시, 탈가정 청년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외치면서 꿈에서 깬적도 있답니다. ㅎㅎㅎ)
사실 저는 처음부터 제도나 의제화에 대해 잘 알던 사람은 아니었어요. 원래 공연예술을 전공했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예술 콘텐츠를 만드는 걸 즐거워하던 사람이었죠. 하지만 탈가정 청년을 만나고 이 친구들에 대해 공부하고, 전혀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제 역할에 대해서도 좀 더 새롭게 정리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청년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니 그 일을 계속하되, 거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제가 수집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들에게 이 이야기를 연결 하는 것까지가 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거죠. 그래서 더 나아가서는 이 친구들을 위한 실제 지원 제도가 만들어지고, 지원이 확산되기까지지 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82북스 / (좌)탈가정청년 연말모임,
(우)탈가정청년 조례 제정을 위한 정책 토론
이 친구들을 위해서 남원에 새로운 단체를 설립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배경과 계획으로 기업을 설립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맞아요. 올해 282북스가 탈가정 청년 통합 자립 지원을 위한 비영리 임의단체 [52헤르츠 고래들]을 설립했답니다. 282북스는 여러 사회소수그룹의 이야기를 다루는 기업이지만, 지난 4년간 장기 프로젝트로 탈가정 청년 의제화를 집중해서 진행하다보니, 다른 이야기를 접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탈가정 청년 당사자들에게도 더 전문적으로 필요한 것들도 있다고 느껴졌고요.
그래서 282북스의 역할을 좀더 명확화 하고,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줄 수 있는 또 다른 단체를 만들어 둘의 역할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82북스는 청년들의 심리/정서적 안정을 지원하고 탈가정 청년 이슈를 확산하는 역할을 한다면, 비영리 임의단체인 [52헤르츠 고래들]은 조금 더 실질적으로 청년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연결하고, 청년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단체입니다.
52헤르츠 고래들은 남원에 있는데요. 작년부터 준비하던 일이 ‘탈가정 청년과 고립 청년들의 지역 정착’에 관한 일이었거든요. 2025년에 본격적으로 그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남원이라는 지역을 선택하여 탈가정 청년이 정착하고 삶을 리빌딩 할 수 있는 ‘고래하우스’라는 주거 플랫폼을 만들고 운영하게 된 거죠.
4년 동안 제가 만난 탈가정 청년 중에는 제 삶을 따박따박 잘 살아가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저 버티고 있는 친구들도 많았거든요. 사실 대부분이 그랬어요. 삶을 유지하기 위한 생계형 일자리에서 일을 하느라 본인의 미래를 설계할 시간도 없고, 적은 월급으로는 그 달의 월세 내기에 급급하고. 빚이 빚을 낳고… 삶을 살아내느라 이미 다른 청년들에 비해 커리어가 늦어진 탈가정 청년들은 점점 빛을 잃어가더라구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보니, 그 친구들에게는 지역에서의 삶이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여러 지역을 알아보다가 제 고향인 ‘남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남원에서의 실험이 안정화되면 다른 지역으로도 옮겨다니며 ‘고래하우스 남원점, 창원점, 속초점’ 등등 이 모델을 확산하면서 지역 문제도 해결하고 청년문제도 해결하는 두 마리 고래를 잡아보려고 합니다. :)
ⓒ282북스 / (좌)‘52헤르츠 고래들’ 서울디자인페스타 참여 부스, (우)고래하우스 사진
사회소수그룹을 위해 활동하는 282북스가 절대 타협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엇! 저희는 타협을 잘하는 편인데요. 현실과 상황에 맞게 방법은 유연하게 바꾸고, 형식도 계속 조정해가요. 그래서 이런 질문은 그동안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재미있습니다! 저희는 ‘타협’을 안하다기보다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요. 아, 다시 말하면 ‘최선을 다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282북스와 함께하는 사회 소수그룹은 정말 큰 용기를 내고 와서 자신의 변화, 사회의 변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친구들이에요. 그런데 저희가 포기해버리면 그들의 이야기와 그 용기가 힘을 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사회소수그룹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있어서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것이 저희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고요.
대표님과 282북스가 꿈꾸는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이 세상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갖춘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282북스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그 방법을 찾을 수 있게, 정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돕고 있거든요. 여러 갈등이 참 많은 우리 사회이지만 결국 갈등이나 문제상황에서 중요한건 서로 소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우리사회는 서로 소통하는 방법이 약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282북스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누구든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강한 소통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예술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예술을 통해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아름다운 사회를 꿈꿉니다"
긴 과정을 거쳐 아름다운가게 뷰티풀펠로우 15기로 선정되셨는데요, 뷰티풀펠로우로 함께하게 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사회적기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사회적경제 영역 안에 들어왔을 때 가장 함께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바로 ‘뷰티풀펠로우’ 였어요. 기존에 선정된 펠로우 분들이 다 너무 멋지셔서 선정된다면 저도 왠지 멋진 사람이 될 것만 같았거든요.
그리고 이번이 첫 도전은 아니었는데요. 몇 년 전 서류에서 광탈한 적이 있어요. 사실 그때는 “나 뷰티풀펠로우 신청했다. 왠지 될 것 같다.”고 팀원들과 다른 기업 대표님들한테 동네방네 말하고 다녔는데 떨어졌더랬죠. 그래서 이번에는 지원서를 제출하고도 아무말 안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2차 대면 심사 전이 되어서야 이 단계까지 왔다고 이야기를 했답니다. 뭔가 그 단계까지만 합격했어도 충분히 자랑할만 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4단계의 긴 과정을 거치고 펠로우 선정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어요. 이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요. 정말정말 기뻤어요. 팀원들에게 제일 먼저 이 기쁜 소식을 말하고, 이후에 여기저기 소문을 냈는데 다들 정말 요란떨며 축하해주시더라구요. 다들 주접력이 뛰어나시더군요. :)
이렇게 축하를 받다 보니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순간도 있었는데요. 선정 과정을 거치면서 만났던 멋진 대표님들도 계신데, 내가 진짜 펠로우가 되는게 맞을까 라는 의심을 아주 잠깐!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가서 펠로우라고 했을 때 부끄러울 짓을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도 했고요. 창업 이후에는 계속 그랬던 것 같지만 올해도 일을 하면서 그만두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정말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아, 여기까지인가…! 더 이상 안되는 건가..!!’ 생각할 때마다 펠로우 합격 메일들이 오더라구요. 펠로우 선발을 통해 지치지 말고, 그만두지 말고 하고자 하는 일을 앞으로도 열심히 해내라는 뜻으로 알고! 앞으로 3년 아주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아름다운가게 / 뷰티풀펠로우 15기 282북스 강미선 펠로우
282북스의 소셜미션
다양한 사회문제 속 소수 그룹이 건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도록, 예술을 통한 사회의 소통구조를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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